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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의 피서법이 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비 올 것처럼 높은 습도에 끈적이며 달라붙는 옷, 그 언제보다도 시원한 무언가가 그리운 지금, 누구에게라도 효과적인 피서법을 훔치고 싶어진다. 아직 휴가 갈만큼 충분한 여유가 없고 늘어가는 뱃살에 칼로리 충만한 팥빙수가 부담스럽다면 나에게도 누구에게나있는 오래된 책장을 뒤져보자.
문학에는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가 즐비하지만 여름 밤, 오싹한 재미와 스릴을 즐기고 싶다면 스릴러 소설과 호러 소설에 주목해보자. 때로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수사하고 어쩔 때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마주치면서 빠져들다 보면 무더위도 여름도 순식간에 지나간다고.
그렇다면 올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 스릴러 소설 3편과 호러 소설 2편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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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무호흡 잠수 챔피언이었던 르베르디가 말레이시아에서 연쇄살인으로 체포된다. 하나의 가십거리를 발견한 ‘한 때는 잘나갔던’ 타락한 저널리스트 뒤페라가 사냥개처럼 사건을 파고든다. 뒤페라는 가상의 여인을 만들어 르베르디에게 다가서고 그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뒤페라는 르베르디를 알아갈수록 그의 미학적인 살인의식에 빠져들게 되고 그의 궤적을쫓아간다.
이 소설은 프랑스 작가 장 크로스토프 그랑제가 ‘악의 기원 3부작’으로 쓴 첫 번째 작품. 작가 특유의 먹먹할 정도로 어두운 분위기에서 인간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악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인간이 악을 통해 광기의 존재가 되어버리는 검은 선을 아련하게 가늠해볼 수 있는소름끼치는 스릴을 준다.
출간 당시 세계적으로 ‘다 빈치 코드’가 열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위에서 끌어내리고 20주 동안 종합베스트를 차지한 작품으로 정교한 심리적 플롯과 섬뜩한 기계장치 같은 스릴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유골의 도시」-마이클 코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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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보슈의 15번째 사건은 헐리우드 산 속에서 시작된다. 그곳에서 발견된 10살 남짓의 어린아이의 유골, 20년 전에 사망한 뼈의 주인은 가혹한 학대를 받은 채로 죽어 있었다. 이에 분노한 해리 보슈는 꼭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리라고 다짐하고 근방에 살던 아동 성추행 전과범인 니콜라스 트렌트를 의심한다. 그런데 니콜라스 트렌트가 유서를 남긴채 자살하고 경찰은 트렌트의 범행으로 빨리 사건을 종결지으려 한다.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 해리 보슈는 사건을 끝까지 파고들고 결국 들라크루아 가(家)의 비밀과 맞닥들이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전통적인 권선징악 스토리에 정의로운 인물로 보이는 해리 보슈지만 자신의 절망이 결국 구원받을 수 없다는 자괴감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이 마이클 코넬리 소설의 또 다른 재미. 스릴러 소설로서 흠잡을 데 없을 만큼 깔끔한 플롯과 여유로운 완급조절로 한 번에 읽어내려갈 만큼 매력적이며 그의 소설에 매번 등장하는 충격적인 반전도 읽는 재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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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형식의 스릴러로 탈피하고 싶다면 ‘좀비가 등장하는 SF스릴러’에 주목해 볼만 하다. 미래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더욱 커져가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좀비물들이 좀비와의 치열한 전쟁을 그렸다면 ‘세계대전Z’는 새로운 시점과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좀비전쟁 후 인간들의 안전이 일정부분 보장되었을 때 UN의 전후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각계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하며 사건을 되짚어 본다. 다큐멘터리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기승전결의 형식을 갖추고 철저한 고증을 통해 현실감을 높여주면서 하나의 스릴러로 완성된다.
도무지 장르를 구분하기 힘든 이 작품은 방송작가 출신 맥스 브룩스가 발표해 단숨에 아마존닷컴의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밀리언셀러로 등극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대전Z’의 영화화를 위해 배우 브래드 피트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영화 판권을 두고 대립했으며 현재는 브래드 피트에 의해 영화화되고 있다.
「검은집」-기시 유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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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보험회사에서 보험금 지급을 담당하고 있는 신지, 불만접수로 고모다라는 남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고모다의 아들인가즈야가 목을 매달고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기겁한다. 그러나 고모다의 침착한 반응과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정황으로 보험금을 노린 살인이라고간주하고 보험금 지급을 미룬다. 사이코패스로 추정되는 고모다는 신지 주변을 맴돌고 신지는 점점 끔찍한 사건에 휘말려 간다.
인간의 감정을 가지지 못한 ‘사이코패스’란 개념을 널리 알린 일본작가 기시 유스케의 소설 ‘검은집’은 국내에서도 배우 황정민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어 화제가 된바 있다. ‘인간이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는 소설은 영화와는 또 다르게 숨을 옥죄이는 본능적인 긴장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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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스릴러와 호러라는 장르문학에 국내 작가의 약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섭섭하다. 국내 작가 특유의 상상력과 스토리로 무장한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4’는 ‘플로토의 후예’ ‘첫 출근’ ‘폭주’ ‘도둑놈의 갈고리’ ‘배심원’ ‘더블’ ‘행복한 우리 집에 어서 오세요’ ‘배수관은 알고 있다’ ‘도축장에서 일하는 남자’ ‘불귀(不鬼)’ 등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다양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폭주’는 혜성과 충돌로 인해 8시간 후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의 이야기를 담았다. 무차별적인 살인을 일삼는 집단이 나타나면서 곧 멸망할 지구는 하나의 지옥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도둑놈의 갈고리’는 과거 연인이었던 남자가 퍼뜨린 몰카 때문에 직장에서 쫓겨나고 사회에서 매장된 여성을 명화 ‘고디바’와 연관하여 흥미롭게 풀어냈다. 한 여성이 몰락해가는 과정이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무서운 이야기.
이 소설은 한국적 문학성을 가진 작가들이 10개의 단편소설을 통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공포소설을 선사하는 것만으로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국내 독자들에게 성공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 공포소설 단편선’을 통해 발표된 여러 소설이 영화화와 드라마화를 위해 판권이 판매되었으며 시리즈 제목 자체를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화 프로젝트도 논의되고 있어 소설을 넘어 방송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진제공: 문학동네, 랜덤하우스, 황금가지, 창해)
한경닷컴 bnt뉴스 김민규 기자 minkyu@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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