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지음
최필원 옮김, 그책, 404쪽
1만3500원


추리소설은 흔히 ‘자본주의 문학’이라 불린다. 재미를 즐길 여유가 생긴 중산층의 기호에 부응해 본격 등장한 장르라는 이유에서다. 자본주의가 꽃 핀 영미권에서 성행하기 시작했다는 것도 그 근거의 하나다.

 그런데 이 추리소설 참 묘하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듯이 제목과 달리 이야기에 도끼(ax)가 등장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다섯 명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 이야기이니 분명 범죄소설인데(이는 넓은 의미의 추리소설이다) 느낌은 사회고발 소설에 가깝다.

얼른 떠오르는 책이 마르크스의 친우(親友) 엥겔스가 노동자 실태를 고발했다는 『영국에 있어서의 노동자계급의 실태』다. 20세기 미국의 추리문학계의 ‘그랜드 마스터’가 쓴 이 소설 역시 자본주의에 대한 기소장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소설 주인공 버크 데보레는 50대의 실직자다. 20여 년간 제지회사에서 영업과 생산라인 관리를 한 전문가지만 합병의 여파로 1995년 10월 해고됐다. “해고된 직원 대부분이 그저 예기치 못한 휴가를 받는 것으로, 그리고 즉시 다른 회사에 취직될 거라고 믿듯이” 그도 착실하게 재취업 준비를 한다. 언제 좋은 소식이 올지 몰라 우편물이 배달될 때마다 집을 지키는 것도 버릇이 된다. 아내 마저리는 긴축에 들어갔다. 헬스클럽과 원예 연수모임을 취소하고 케이블 채널과 백화점 쇼핑을 끊었다. 파트 타임 일도 시작하고 식탁도 달라졌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저축이 바닥났다. 아들들은 학교를 마쳐야 하는데, 대출도 갚아야 한다. 그는 깨닫는다. 자기 같은 사람들은 널려 있고 회사는 적은 보수와 혜택에도 맡겨진 일에 의욕을 불태울 사람을 찾는다는 사실을. 그리고 사내 재취업 트레이닝에서 들은 말을 떠올린다. “일자리와 봉급과 중산층의 멋진 삶은 권리가 아닌,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전리품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그는 업계 전문지에 가공의 제지회사 명의로 구인광고를 낸다. 구직광고가 아니라 구인광고다. 잠재적 취업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다. 접수된 이력서 중 자신보다 우월한 스펙을 지닌 다섯 명을 차례로 살해해 나간다. 살인을 진행해 가면서 데보레는 자신을 합리화한다. “내 가족, 내 인생, 내 대부금, 내 미래, 나 자신을 살리는 일이니까 (살인은) 명백한 정당방위다.” “내 목적과 목표는 간단하다. 나는 내 가족을 잘 돌보고 싶다. 이 사회의 생산적인 구성원이 되고 싶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쉽지 않았지만 나는 결승점만 바라보고 달려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CEO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미안한 마음을 전혀 가질 필요가 없다”고. 데보레는 재취업에 성공할까. 아니면 파멸에 이를까.

 자본주의의 비정한 단면이 만들어낸 ‘괴물’을 그린 이 소설은 1인칭으로 풀어간 덕에 세부 심리묘사가 생생하다. 명탐정도, CSI 같은 과학수사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야기는 흡인력이 있고 문제의식은 울림이 있다. 영화감독 박찬욱이 영화화를 욕심 내는 것도 그 때문이지 싶다.

김성희(북 칼럼니스트)

Posted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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