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의 사계절-한겨울 의 제물
몬스 칼렌토프트 지음
강명순 옮김, 문학수첩
576쪽, 1만4800원


‘살아서는 늘 조롱거리였다가 죽고 나서야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살해당한다. 150㎏의 육중한 몸에 피칠갑을 한 채 나무에 목 매달린 상태로 발견된다. 혹한으로 마비된 스웨덴의 소도시 린셰핑 교외에서다. 33세 싱글 맘 말린 포르스 형사가 신원 확인과 범인 추적에 나선다.

 스웨덴에서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뛰어넘는 인기를 모았다는 이 소설의 얼개다. 한데 추리물임을 바로 드러내는 저렴한 제목과 달리 소설은 매혹적인 장치를 여럿 갖췄다. 우선 문체의 미학이 눈에 띈다. 현재형의 짧은 문장은 ‘분노에 찬 듯 밀려드는 냉기’와 더불어 긴박하고 생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반 장르소설에선 볼 수 없는 문학성도 다양한 독자층을 끌어들인다. ‘사랑과 죽음은 이웃이다. 죽음을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사랑을 확실하게 막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추위가 다니엘 회그펠드의 말을 칭칭 동여맸는지, 그의 말이 오는 도중에 공기에 밀려난다.’ 이런 표현을 추리소설에서 만나기는 힘들다.

 잠언과도 같은 통찰력도 돋보인다. ‘집은 소유의 다른 이름이고, 소유는 단지 의무를 의미할 뿐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어울리는 것은 맞다. 하지만 유전자코드가 약간 다르다고 해서 이웃이 될 수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과거와 현재, 여기와 저기, 내부와 외부가 부딪치는 곳에서 폭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런 구절들이 작품의 무게를 더한다. 일인칭과 삼인칭을 오가며, 피살자의 독백을 활용하는 기법도 이색적이다. 모두 순수문학 작품으로 스웨덴 최고 문학상을 받은 지은이의 솜씨가 발휘된 대목이다.

 반면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인 ‘경찰소설’이다. 수사과정의 시행착오까지, 세밀화처럼 촘촘히 보여주는 것이, 경찰소설의 전범인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나 스웨덴의 인기 추리작가 헤닝 만켈의 작품들을 연상케 한다.

 말린 형사는 피살자가 은둔자 생활을 하던 볼벵트란 사실을 안 뒤 그의 과거를 추적한다. 그는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다 부친에게 도끼를 휘둘렀던 불우한 십대를 보낸 정신장애자다. 그를 돌봐주던 사회복지사 마리아 무르발이 성폭행 당한 사실, 무르발 일가는 사회에서 소외된 광폭한 무리라는 것, 여기에 폭력과 소외의 희생양이었던 아버지에게 다른 형제가 있다는 사실이 차례로 드러난다.

 소설은 남자들의 방종, 비뚤어진 복수심, 가정학대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또 고독으로 인한 분노는 인간을 얼마나 쉽게, 어디까지 폭력적으로 만드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덕분에 추리소설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도 읽고 나면 이어 나올 시리즈 후속작을 기다리게 될 범상치 않은 작품이 됐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Posted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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