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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라우라 리프먼 지음/ 홍현숙 옮김/ 레드박스 펴냄/ 1만 3800원
SF물이든 판타지물이든 흔히 '장르'로 소개되는 작품에는 일종의 규칙이 있다.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일정한 틀 안에서 예측할 수 있는 뻔한 상황을 보다 재미있게 포장해서 같은 소재, 인물로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를테면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은 공포영화의 '클리셰'를 말 그대로 진부하게 반복하면서,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한번 재미를 보면 시리즈로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반복이 쌓이고 쌓이며 또 다른 규칙이 만들어진다. 장르 시장이 작지만 꾸준히 형성되는 건 이 문법에 익숙한 일련의 마니아층 덕분이다.
신간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이 장르 문법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재미를 선사하는 독특한 소설이다.
흔히 추리소설은 초반부에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 소설은 범인이 누구인지 밝힌 상태에서 범인과 피해자 간에 오가는 심리적 긴장감만으로 이야기를 유지한다. 살인의 트릭적 요소나 마약, 폭력 같은 충격적인 내용도 없다. 작가는 인물들의 심리전만으로 놀라운 흡입력을 자랑한다.
서른여덟 살의 엘리자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남편과 아이 둘을 둔 미국 중산층 주부다. 하지만 평범한 그녀에게 트라우마가 있었으니 23년 전, 15살 되던 해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돼 40일 동안 끌려다니다가 가까스로 살아남은 기억을 안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의 편지가 날아든다. 발신자는 자신을 납치 강간했던 연쇄살인범, 월터. 사형 집행일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엘리자에게 제발 자신에게 답장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그녀는 자신이 엄청난 살인 사건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이 소문날까 두려워 그의 부탁을 하나씩 들어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어떤 면에서는 그 사람을 영원히 잃는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본다면 월터를 잃는 것보다 더 좋은 게 뭐가 있겠는가? 엘리자는 그를 용서할 아무 이유가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291페이지)
'월터는 그녀 안의 모든 빈틈이었고, 둘로 나뉜 그녀의 인생을 연결하는 결합 조직이었다. 월터는 그녀에게 결코 다시는 함께 살 수 없는 이웃이었다. 엘리자가 자신을 무어라 부르든, 그는 그녀의 이름에서 떨어져나간, 그러면서도 영원히 그녀의 일부이자 늘 함께하는 사라진 음절이었다.' (514-515페이지)
의문에 휩싸인 채 양 극단에 놓인 두 인물에 동시에 감정 이입되면서 끝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이 소설은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자신을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난 해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장르문학의 대가, 스티븐 킹의 격찬과 <워싱턴 포스트>, <시애틀 타임스> 등의 호평을 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성 양면에서 좋은 점수를 받은 바 있다.
● 경연, 왕의 공부
김태완 지음/ 역사비평사 펴냄/ 2만 2000원
조선시대 국왕이 당대 석학들과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국가 정책을 토론하는 자리를 경연이라 부른다. 신간 <경연, 왕의 공부>는 경연의 유래와 역사, 경연에 쓰인 교재, 경연관의 선발 방법, 경연 정차와 목표 등 경연에 관한 모든 것을 설명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실제 경연 기록을 발췌해 왕과 신하들의 경연 모습을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 꽃의 나라
한창훈 지음/ 문학동네 펴냄/ 1만 1000원
'바다 사나이' 한창훈의 신작 장편소설.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 겪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경험담과 함께 국가 폭력 앞에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한편의 성장소설로 담아낸다.
큰 꿈을 품고 도시에 안착했던 17살 소년 '나'는 도시와 학교의 폭력에 혼란스러워하며 그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 학교 폭력서클에 가입한다. 이후 대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데모를 하고 민주주의 물결이 도시를 물들인다.
● 한국의 주택, 그 유형과 변천사
임창복 지음/ 돌베개 펴냄/ 2만 6000원
1876년 개항부터 2000년까지 약 120년 동안 우리나라 단독주택 변천사를 토대로 국내 주거문화를 분석한 책이다. 근대 이후 등장한 수많은 주택을 유형화하고 사회 계층에 따라 이 주택 형식을 나눠 설명한다.
양식주택, 선교사주택, 일식주택, 근대한옥, 도시형 한옥, 영단주택, 새마을주택, 오늘날 다세대․다가구 주택 등 우리 주거문화의 근대화 과정을 다양한 시각 자료로 보여준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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