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이 단아하다. 연인을 기다리는 여인의 마음이 엿보인다고 해야 할까. <회귀천 정사>(2011,시공사)속 ‘정사’란 단어가 주는 이미지 때문이다. 그러나 제목의 정사는 ‘情事’가 아니라,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해 함께 자살하는 ‘情死’다. 다르게 말하면 사랑 때문에, 사랑을 위해 죽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랑이기에,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이 궁금하다.

꽃을 주인공으로 하는 추리소설이라 그런지 표제작 <회귀천 정사>를 포함한 5편의 소설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누가 무슨 이유로 살인을 했느냐 보다 소설마다 등장하는 꽃(등나무꽃, 도라지꽃, 오동나무 꽃, 연꽃, 창포꽃)이 갖는 의미와 향기에 주목한다. 때문에 살인 방법마저 잔인함이 아닌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연쇄 살인사건과 범인을 먼저 밝히고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등나무 향기> 속 여자는 가난 때문에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겐 아픈 부모와 돈이 필요한 형제가 있다. 고향에 보내는 편지를 대신 써주며 사연을 알게 된 대필가는 그녀들을 가족이란 올무로부터 구해준다. 자신은 폐결핵으로 곧 죽을 꺼란 걸 알기에 살인이라는 과감한 방법을 선택한다.

추리소설이라면 섬뜩하고 기묘한 게 당연한데, 이 소설은 몽환적이고 아름답다. 어린 시절에 대한 일들을 어머니가 의식적으로 주입한 기억이었음을 알고 자신의 성장과정에 의문을 갖는 <흰 연꽃 사찰>과 오직 단 한 사람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천개 가인 소노다의 주도면밀한 계획이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 <회귀천 정사>는 더욱 그렇다. 모든 사건의 비밀을 알아차리기에 문장은 너무도 아름답다. 기존에 만나지 못했던 색다른 소재여서 소설을 읽는 동안 어느새 꽃을 묘사한 문장에 빠져들고 만다.

‘다양한 문양을 그리는 흰색과 보라색 꽃으로 어둠 속 강은 꽃무늬 옷을 두른 것처럼 보였다. 눈앞을, 덧없는 선을 그리며 어둠에서 다시 어둠으로 흘러가는 꽃들은 마치 소노다가 남긴 수천 수의 노래를 이루는 무수한 언어의 잎으로도, 소노다와 정을 나눈 여자들 속에 남아 있던 생명의 빛으로도 보였다.’ p. 359 <회귀천 정사 중에서>

5편의 소설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인 1912년에서 1926년까지 일본은 정치 및 경제가 불안했고 대지진이 일어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때문에 사람들은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누군가의 손에 꺾이는 꽃처럼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저 단순한 추리소설이라 여기며 읽었던 마음은 마지막엔 짙은 빛이나 투명한 느낌의 유화와 마주한다. 두 번째 읽게 된다면 꽃잎 하나 하나에 숨겨진 복선과 슬픔을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꽃을 볼 때마다 이 기묘하고 오묘한 소설이 생각날 것이다.

Posted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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