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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공포를 읽는다! 올여름공포소설 올가이드

저격수 2010. 8. 9. 21:29
여름이면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소름 끼치는 납량특선 영화, 일년내내 목놓아 기다리던 휴가 등등. 그 중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바로 공포소설이다. 어린시절부터 주욱, 삼복더위에 때 아닌 오한을 일으켜줬던 <지킬박사와 하이드> <드라큘라> <처녀귀신> 등 바로 그 고마운 친구들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공포도 변한다. 그네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공포를 주지 못한다. 이젠 너무 친근한 존재가 돼버렸기 때문. 사실 귀신이라는 존재는 너무 수동적이다. 능동적으로 사람을 공격하기 보다는 그냥 먼발치에서 하얗게 분칠한 얼굴을 내리깔고 째려보기만 할 뿐. 우린 그냥 무시해버리면 된다. 거기에 드라큘라나 좀비 등은 조금 너무 허황스럽다. 도무지 현실세계에서 찾아볼 수가 없다. 이미 책이나 영화 속에서만 움직이는 그런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우린 그냥 책을 덮어버리거나 TV를 꺼버리면 된다. 너무나 쉬운 공포 탈출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발전된 공포소설을 원한다. 하루면 다 읽어버리지만, 두고두고 한 달은 너끈하게 우리의 뒷골을 서늘케 하는 바로 그런 무섭도록 뒤끝이 긴 소설을 원한다.

지금, 우리가 진정 무서워하는 공포는?

그러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진정으로 무서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일상생활 속 평범함이 아닐까. 또 우리가 방송이나 인터넷에서 수시로 듣고 있는 사회적 사건에 대한 소재들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10명의 처녀 귀신보다도 교통 지옥, 가족의 해체, 불륜과 보복, 은둔형 외톨이와 엽기적인 살인 등이 훨씬 더 무섭다. 주위에서 늘상 접하고 있는 내 이웃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며, 소설을 덮는 순간 내일 아침 나에게 현실로 일어날 것 같은 생생한 공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포소설도 진화를 거듭했다. 한국의 공포소설은 기존에 보여줬던 원혼이나 이웃집 귀신 대신 현실의 비참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보다 더 섬뜩하고 소름끼치는 공포를 선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공포소설 작가 스티븐 킹 역시 마찬가지. <미저리>, <그린마일>, <샤이닝> 등 그의 인기 작품 속에선 유령이나 귀신, 좀비 등을 찾아볼 수가 없다.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는 소재로 끔찍한 공포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날 것만 같은 뒤끝 긴 공포 소설들

한국 현대 공포문학의 시발점은 이우혁의 <퇴마록>, 이종호의 <분신사바> 등을 들 수 있다. 예전 소설답게 귀신을 소재로 썼지만, 전무했던 한국 공포문학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일등 공신. 그리고 몇 년 사이 진화된 작품의 원조로 이종호의 <이프>를 꼽을 수 있다. 연쇄 자살 사건의 비밀을 치밀하게 엮어가는 구성의 탄탄함도 좋지만, 특히 소설 전반에 녹아있는 한국식 정서의 표현이 소설을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공포라는 감정을 넘어선 슬픔까지 이야기한다.

이 더운 여름, 짧고 다양한 공포를 원한다면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5> 시리즈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매년 여름이면 출간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는 국내 유일의 공포문학 작품집으로 벌써 다섯 번째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종호 김종일 등의 인기작가들 외에도 신인 작가들의 작품이 추가되고 있어 그 소재의 다양성도 특별하다. 무엇보다 이 시리즈에는 공포소설하면 떠올리게 되는 머리 긴 여자 귀신이나 흐릿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항상 좀 더 친숙한 소재, 마치 어디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는다. 이번에 신작으로 출간된 5편에는 15년 만의 동창회가 끝나고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 두 명의 이야기인 <놋쇠 황소>, 화해의 이메일을 쓰던 도중 실수로 그만 ‘죽어’라는 오타를 치고 만 이후의 사건들이 담긴 <오타>, 유산 한 아내를 달래주기 위해 무작정 여행을 떠난 남편의 독특한 경험을 담은 <고치> 등 모두 열 가지 이야기가 열 가지 색다른 공포로 포장된 채 담겨 있다.



사회적 이슈에서 찾는 공포의 키워드

공지영 씨의 베스트셀러 <도가니>도 읽을 만하다. 소설은 지난 2005년 TV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광주의 모 장애인학교에서 자행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소외된 계층이 당하는 억압과 폭력의 현장을 글 속에 담아낸다. 우리 사회에 잠재되었거나 우리가 부끄러워하고 애써 외면하려는 거짓과 폭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쳐 우리에게 불편했던 진실을 똑바로 보게끔 만드는 것이다. 작가는 “이상한 일은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사람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정나미가 떨어지는 그만큼 인간에 대한 경외 같은 것이 내 안에서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온전한 작가의 상상에 의존한 소설이 아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전개이기에 더욱 가슴이 아픈 작품이다.

일본에는 어린 시절 아르센 뤼팽의 창시자인 모리스 르블랑의 소설 <813의 수수께끼>라는 책을 읽고 추리소설의 세계에 빠져든 누쿠이 도쿠로라는 작가가 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쓰고 싶어서 미스터리를 쓰고 있다”며 “사건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얽히면 사건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감정이 격렬하게 움직인다. 나는 그 감정을 최대한 드러내고자 미스터리를 쓴다”고 부연 설명한다. 어쨌든 그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미스터리 작가이다. 그가 발표한 일명 ‘증후군’ 시리즈는 일본의 서점가에서 10년을 넘는 세월동안 베스트셀러의 목록을 지배하고 있다.

그 중 <실종증후군>은 그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제목처럼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실종사건을 다룬다. 중요한 점은 그들이 자발적으로 실종을 택했다는 것. 모두가 자신의 인생을 ‘리셋’하고 싶어서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것이다.



세계 공포문학의 거장, 스티븐 킹

시선을 미국으로 돌리면 데니스 루헤인의 <운명의 날>이 있다. 노사 인종 남녀갈등이 폭발하던 1919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노동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보스턴 경찰파업을 심도있게 그려낸 장편소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우리가 현재 걱정스러워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추리소설 작가의 매서운 눈매를 통해 100년 전 역사 속에서 부활한다.

물론 스티븐 킹도 빼놓을 순 없다. 대중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그가 약 30년간 쓴 500여 편의 작품은, 전 세계 35개국에서 33개 언어로 번역되어 3억권 이상이 팔렸다. 존 그리샴, 톰 클랜시 등도 스티븐 킹의 판매량엔 미치지 못한다. 생존 작가로서는 단연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여느 공포와는 다른 매력적인 공포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썩은 야시장의 비린 생선 냄새 같은 이상한 감촉의 공포다. 예리한 컷터 날과 같은 차갑고 섬뜩 한 공포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언제나 젖어있는, 축축해서 기분 나쁜 그런 공포다. 그의 소설이 다분히 중독성이 강한 이유이다.

그 중 원고지 8500매의 여느 장편소설 6권을 모아놓은 분량의 <스탠드>를 주목해보자. 작품에서 지구의 종말을 언급하는 작가는 변종 독감 바이러스란 단어를 독자들에게 내민다. 네바다 사막의 생화학전 연구소에서 누출된 그 바이러스는 사회를 안에서부터 붕괴시킨다. 당장 자신의 생존을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은 서서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게 되고, 인류의 존속을 결정지을 최후의 선택지가 가로 놓이게 된다.



그래도 오래된, 하지만 익숙한 공포를 원하는가?

아쉽지만, 그래도 익숙한 공포를 원한다면 역시 좀비와 뱀파이어들이다. 먼저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계적 클래식으로 꼽히는 제인 오스팀의 <오만과 편견>이 좀비에게 습격당한다. 원작의 주인공 명랑한 엘리자베스와 고고한 다아시 사이에 피 흘리며 돌아다니는 죽은 시체, 좀비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의 플롯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의 발생으로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상황을 가미하여 원작의 내용을 변주한 것. 그래서 소설은 원작의 로맨스를 넘어 유머와 흥미진진한 결투가 버무려진다. 영화로 치면 코믹과 액션과 공포영화가 로맨스 영화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섞여버린 것이다.

소설은 한때 함께 무도회를 즐기고 정답게 담소를 나누던 이웃들이 좀비가 되어 인간사회를 위협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좀비는 젊은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과 갈등, 오해와 편견들을 신랄하게 드러나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 상류사회의 위선을 통렬히 풍자한다. 시대적 교양이 한계가 되었던 원작과 달리, 생명을 지키는 것 자체가 본질적 문제가 되어 주인공들의 허식과 위선을 벗어던지게 만들고 인간의 이중성을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좀비의 등장이 단순한 재미적 요소에 그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뱀파이어 이야기를 원한다면 <렛미인>을 놓치지 말자. 어느 해 겨울, 우리는 흔치 않은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을 만났다. 부천 판타스틱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며 많은 마니아를 모았던 영화, 물론 평론가의 극찬 또한 한 몸에 받았던 영화, 바로 열두 살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우정을 그린 <렛미인>이다. <타임>이 선정한 ‘2008년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영화’ <렛미인>은 우리에게는 아직 이름만 친숙한 스웨덴에서 왔다. 배경은 스웨덴의 1981년이다. 이야기는 지옥 같은 현실에서 탈출을 꿈꾸는 열두 살 왕따 소년과 그런 소년을 위해 복수를 해주는 뱀파이어가 이끈다. 장르는 호러. 하지만 화면에서 관객들을 사로잡은 이미지는 무섭고 끔찍함이 아닌 시적인 영상과 간결미였다. 그랬던 이 영화에도 원작이 있었으니, 시나리오를 쓴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동명소설 <렛미인>이다. 영화는 원작의 뼈대만 고스란히 살린 한 편의 시(詩)이다. 그에 반해 소설은 그곳에 살과 근육질을 붙인 대작. 영화가 암시적으로만 언급하고 지나간 것들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맥락을 소설에서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독자께 드립니다
이 여름 무더위를 식혀줄 책 한 권을 독자께 드립니다. 매드클럽 작가들의 오싹한 이야기만을 모은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5>입니다. 이메일 citylife@mk.co.kr로 응모하시면 추첨을 통해 책을 우송해 드립니다.

[고원상 매경출판 출판팀장 겸 북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240호(10.08.17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