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오마주’만 있고 추리는 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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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눈은 다양한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러브레터> 같은 첫사랑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아침 출근길의 교통 체증을 생각하며 한숨짓는 사람들도 적잖을 거고. 하지만 올겨울 하늘이 뚫린 듯 펑펑 떨어지는 눈송이를 본 추리소설 애호가들은 대동소이하게 비슷한 장면을 떠올렸으리라. 눈 속의 산장, 자연의 밀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쥐덫>부터 센다고 하면 추리소설 역사상 눈 속의 산장에서 죽어간 사람이 대체 얼마나 될까? 물론 나는 그런 무모한 시도는 할 마음이 없다.
최제훈의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첫 장인 <여섯 번째 꿈>은 이 ‘눈 속의 산장’ 설정을 빌려왔다. 눈보라가 치는 산장에 익명의 초대를 받고 여섯 명이 모인다. 법대생, 무명 여배우, 가정주부, 피시방 주인, 레지던트, 스페인어 번역가. 이들은 모두 ‘실버해머’라고 하는 연쇄살인범 웹사이트의 이용자이다. 고립된 산장에서 한 명씩 차례로 죽어간다는 설정은 여타 추리소설과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나 <십각관 살인사건>처럼 시작했으나 이내 <이데아의 동굴>처럼 흘러간다. 다음 장 <복수의 공식>에서는 앞장의 이야기가 소설 안 세계에서도 상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게 되고 <π>에는 <여섯 번째 꿈>이라는 작중 소설을 번역하는 사람이 나와 텍스트 안과 밖 사이의 벽을 무너뜨린다. 마지막 장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는 동명의 소설이 언급되면서 에스허르의 ‘그리는 손’처럼 자기 자신을 가리킨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는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이라는 말이 반복된다. <π>의 번역가 엠(M)이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을 쓰기를 꿈꾼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미지의 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의 체현이다.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은 무엇일까? 그것이 바로 미스터리? 존재는 알고 있으나 설명할 수는 없는 소설? 육각형의 벤젠고리를 발견해낸 케쿨레가 꿈에서 본 꼬리 문 뱀처럼 처음과 끝이 맞물리는 어떤 이야기?(나 또한 치열한 탐구 정신으로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에 대한 단서가 있을까 싶어 책에 찍힌 큐아르 코드들까지 찍어봤지만 신비로운 음악을 들었을 뿐 해답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트위터를 볼 수 있는 게임기에 불과한 내 전화기의 부가적인 기능을 하나 확인하며 스마트폰 세대의 독자 기분을 약간 내는 효과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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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자체는 작가의 이상이 무엇이든 단 한 편의 완벽한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다. 작가의 다른 단편소설 <셜록 홈즈의 마지막 사건>에서 시도했듯이 이 책도 추리소설의 도식을 조금은 빌려왔지만 해결보다는 질문을 계속 던진다. 추리소설에 대한 오마주가 보이지만 전형적 추리소설은 이 책 안에서는 일찍이 죽었다. 소설의 각 장에서 여러 이름의 배우지망생은 하나의 인물을 연기한다. 세례 요한의 목을 원하여 일곱 겹의 베일을 벗으며 춤을 추는 살로메. 이는 소설 쓰기와 읽기에 대한 은유 같기도 하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을 읽으면서 성실한 추리소설의 신자인 나는 이교도적 희열을 느꼈는데 사랑하기 때문에 목을 베는 마음을 알 듯 말 듯 하기 때문이다. 번역가·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