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 억엔 유산` 둘러싼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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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쉬지 않고 살인이 일어난다. 범인이 누군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주인공 오토네를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만든 그 남자의 정체가 궁금할 뿐이다. 이건 추리소설일까, 로맨스일까.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요코미조 세이지의 <삼수탑>(시공사, 2012)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오토네는 부모님을 잃고 백부의 양녀로 자란다. 아름다운 외모와 더불어 교양과 지성을 겸비한, 한 마디로 요조숙녀다. 그녀에게 정혼자와의 결혼이라는 조건아래, ‘백 억 엔’이라는 막대한 유산의 상속자란 소식이 전해진다. 백부의 회갑연에서 정혼자와 곧 대면할 상황에 이른다. 그러나 그녀 앞에 나타난 건 살인사건의 시작이었고, 정혼자의 시체였다.
그때 오토네에게 접근한 한 남자가 있다. 거친 매력으로 단숨에 오토네를 사로잡는다. 아, 이제 유산은 어떻하나? 놀랍게도 상속에는 다른 절차가 있었다. 오토네를 포함한 친척들에게 똑같이 분배되는 것이다. 상속자의 수가 줄어들면 상속 받을 금액은 커지니 누군가가 죽어주기를 바라는 숨막히는 전쟁이 시작된다. 오토네 역시 다른 상속자들에겐 없어져야 할 대상이다.
유산 상속자들이 모인 자리 그 남자가 함께한다. 오토네는 묘한 끌림을 놓을 수 없다. 남자와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상속자들이 하나 둘 살인을 당하고 오토네는 경찰과 탐정에게 추궁을 당한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로 요조숙녀 오토네는 사라지고 천박하게 변해버린 도망자 오토네만 남는다.
치명적인 사랑을 선택한 오토네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었는지 모른다. 오토네는 모든 것을 남자에게 의지하고 사랑하지만 살인자란 의심을 버릴 수 없다. 그럼에도 믿을 사람은 그 밖에 없으니, 둘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삼수탑(三つ首塔 - 말 그대로 세 개의 머리 조각이 있는 공양탑)을 찾아 나선다. ‘백 억엔’이라는 거대한 유산을 놓고 벌이는 인간의 욕망과 탐욕이 가득한 해괴한 사건의 시작인 그곳에서 범인과 모든 진실이 밝혀질까?
소설은 탐정이 중심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여타의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범인과 동시에 주인공 오토네를 한 눈에 사로잡은 남자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에서 독자를 흥분시킨다. 탐정과 범인과의 두뇌싸움은 독자를 사로잡을 만큼 뛰어나지 않다. 사건의 개연성도 그렇다. 느닷없이 살인이 일어나고 허술한 부분도 많다. 그럼에도 소설은 재미있다. 사건의 흐름에 따라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그 남자의 실체와 결말이 한 몫을 했을 수도 있다. 1955년에 연재된 소설이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는 점은 역시 빠른 전개와 변장의 귀재로 신출귀몰하는 그 남자와 연인 오토네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