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NEWS
[문화]여름이니까, 스릴만점 추리소설!
저격수
2011. 8. 10. 01:26
ㆍ즐거운 휴가를 위해 아껴둔 12권의 작품
여름입니다. 여름이란 계절은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반가운 시기이기도 하지요. 휴가철이 되면서 그동안 바빠서 잊고 지냈던 추리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는 독자들도 늘어날 것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여름은 추리소설의 계절’이라는 말이 별로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여름 한 철만 읽는 책처럼 보이기 때문이라서요. 물론 한국처럼 바쁘고 다이내믹한 일상이 벌어지는 나라에서 한가하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어쩌면 호사에 가까운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추리소설의 계절’이 돌아왔으니 좋은 작품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휴가 때 한 권 꼭 챙겨 가시는 것 잊지 말고요. 고르기 어려운 분을 위해서 여기 열두 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수상한 라트비아인 |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프랑스 파리 경찰청 기동수사대 소속의 매그레 반장은 국제적 사기범 일명 ‘라트비아인 피에트르’가 기차를 타고 파리로 오고 있다는 전보를 받고 역으로 나가 기다리지만, 도착한 열차의 화장실에서 그의 인상착의와 똑같은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속살인이 벌어지고 매그레 반장은 현장에서 총상까지 입는다. 작가의 초기 작품인 때문인지 매그레 경감의 성격도 아직 잘 나타나지 않지만, 사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작품의 결말부에 가서야 밝혀지는 안타까운 사연들은 훗날 심농이 보여주게 되는 특유의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후 매그레 반장은 장편 75편, 단편집까지 포함하면 100여편에 등장한다.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언더 오더스 | 딕 프랜시스 (랜덤하우스)
탐정 시드 핼리는 과거 기수였으나 장애물경기 중 낙마 사고로 왼팔 일부를 잃으면서 기수로서의 생명도 끊어진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다. 장애물 경주의 최고 권위 대회 첼트넘 골드컵이 벌어지는 날 시드 핼리는 경마장을 방문, 엔스턴 의원과 만나 승부조작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때맞춰 그곳에서 말 한 필과 한 사람이 사고로 죽고 또 한 사람은 살해되는데, 살해된 사람은 기수 휴 워커로 승부조작 의혹이 있다고 의원이 알려준 사람이었다. 핼리가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위협과 폭행을 당하지만 그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진상에 차츰 다가간다.
지난해 초 세상을 떠난 영국 작가 딕 프랜시스의 작품. 젊은 시절 유명 경마 기수로 활약하다가 은퇴 후 작가로 변신한 그는 평생 경마 관련 미스터리를 발표했다.
비트 더 리퍼 | 조시 베이젤 (황금가지)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다. 총을 든 노상강도가 병원 출근길에 나서던 의사를 위협하는데, 순식간에 의사는 맨손으로 강도를 제압해버린다. 알고보니 그는 ‘피에트로’라는 이름의 전문 암살자였던 과거를 지니고 있었다. 학생 시절 피에트로는 조부모가 폭력배에게 살해되자 복수를 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고 마피아 집안의 아들과 친구가 되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복수에 성공한다. 그 이후 그는 암살자로 활동하다가 한 여인을 만나면서 마피아 조직과의 관계가 무너져버린다. 조직에서 빠져나온 그는 현재 FBI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통해 피터 브라운이라는 의사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가 그의 정체를 알던 조직원이었다. 말기암 환자인 그는 자기가 수술 중 죽는다면 피터의 정체를 조직에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단 하루라는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 과거 이야기와 교차되면서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냉소적인 주인공의 독백과 스피디한 전개는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존 르 카레 (열린책들)
정보부의 권력 대결에서 밀려 은퇴한 조지 스마일리는 영국 정보부 안에 소련이 심어놓은 고위층 두더지(스파이)를 찾아내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스파이 소설에서 흔히 기대하게 되는 호쾌한 액션과 비밀무기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 차분하고 느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지만, 줄곧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진다. 1950~60년대에 영국 정보부 소속의 고위직이었던 킴 필비, 가이 버제스 등이 소련에 정보를 넘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최근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개리 올드먼이 조지 스마일리 역을 맡았다)
경관의 피 | 사사키 조 (비채)
2차 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한 가문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경찰로 근무하다가 불의의 죽음을 당한다. 죽음이 근무 중에 일어났다는 것은 같았지만, 한 사람은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또 한 사람은 명예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두 죽음의 진상은 미궁으로 빠진다. 수십 년이 지난 후 3대째인 아들은 선대가 말려들었던 미제사건을 해결해 할아버지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 또다시 경찰관의 길을 걷는다. 이 작품은 2차 대전 이후 60여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풀리지 않는 살인사건을 끈질기게 수사하는 모습을 그린 점에서 정통 추리소설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동시에 경찰 조직의 실상을 보여주는 경찰소설이며, 일본의 근대사까지 비춰주는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그의 연작 단편집 <폐허에 바라다>(북홀릭) 역시 추천작. 센도 형사는 정신적 상처를 입고 휴양 중이지만 그의 지인들의 부탁으로 여러 가지 사건을 조사(수사가 아닌)하게 되는데, 사건의 진상보다는 그 배경이 부각되면서 통쾌함보다는 오히려 씁쓸함, 애틋함이 남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이다.
‘에를렌두르 경감’ 시리즈 | 아날두르 인두리다손
<저주받은 피>, <무덤의 침묵>, <목소리> 등 세 편이 번역되어 있다. 딱 하나만을 지목해서 추천하기 어려운, 모두 권하고 싶을 정도의 추천작. 인구가 30만명을 조금 넘는 아이슬란드에서 미국처럼 엄청난 사건이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벌어질 리는 없지만, 그러나 그곳도 사람이 살고 있는 만큼 범죄가 없을 리는 없다. 작가는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만을 쓴다고 밝혔지만, 성폭행 피해자의 대를 이은 고통을 그린 <저주받은 피>, 가정폭력을 소재로 한 <무덤의 침묵>, 가족의 분열을 다룬 <목소리> 등 그의 작품에서 묘사된 사건은 세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생경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 안의 야수 | 마가렛 밀러 (영림카디널)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노처녀 헬렌은 자신의 친구라고 밝힌 에블린이라는 여인에게서 전화를 받은 후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헬렌은 아버지의 지인이었던 블랙쉬어에게 에블린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그 에블린이라는 여인은 남의 고통을 즐기는 것 같은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이었다. 이미 반세기가 훌쩍 넘은 1955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인간의 무서운 내면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어 어떤 면에서는 더욱 끔찍한 느낌을 준다. 폭력적인 묘사 하나 없이 오고 가는 대화만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대목이나,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함이 넘치는 마지막 장면 등은 마가렛 밀러가 왜 거장 대접을 받았으며, 또한 어째서 걸작은 세월이 흘러도 걸작으로 남아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다의 창 | 존 딕슨 카 (로크미디어)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어느 여인을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그녀의 집을 방문해 예비 장인과 위스키를 마시다가 정신을 잃는다. 그런데 깨어나보니 예비 장인은 가슴에 화살이 박힌 채 죽어 있다. 그 방은 창도 문도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으며 화살은 원래 그 방 안에 있던 물건이었다. 무대는 법정으로 바뀌면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 메리베일 경이 나선다. 사소한 단서 하나하나가 젊은이의 무죄, 그리고 진범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조각이 된다. 존 딕슨 카는 ‘밀실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밀실을 다룬 작품을 많이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 | 아서 코난 도일 외 (비채)
에드거 앨런 포가 <모르그 거리의 살인>을 발표한 지 반세기 가까이 지난 19세기 말, 코난 도일이 셜록 홈스를 창조하면서 추리소설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1880년대 말부터 1890년대 초반까지 홈스의 대성공에 힘입어 영국과 미국에서는 단편 추리소설이 유행하고 새로운 주인공들이 속속 탄생한다. 이들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은 대다수가 기억에서 잊혀졌지만 일부는 고전으로 남았다. 정통 추리뿐만 아니라 악당(?)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으며, 단편이므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블랙 에코 | 마이클 코넬리 (랜덤하우스코리아)
연쇄살인범 용의자를 사살하면서 과잉 수사라는 물의를 빚어 LA 경찰에서 할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된 형사 해리 보슈. 그는 배수관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 약물 과용에 의해 죽은 듯한 사람이 자신의 월남전 참전 시절 동료였음을 알게 되면서 그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조사를 진행하자 그 뒤에는 1년 전 있었던 LA 최악의 은행 강도 사건이 연결되어 있었다. 해리 보슈는 능력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정의 실현을 위해 좌충우돌하는 굽힐 줄 모르는 태도 때문에 견제세력도 많은 인물.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주인공 중 하나가 된 해리 보슈가 처음 등장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후속작품도 계속 번역되고 있어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가다라의 돼지 | 나카지마 라모 (북스피어)
8년 전 아프리카에서 어린 딸을 사고로 잃은 이후 알코올에 빠져 폐인이 되다시피 한 민족학 교수 오우베는 자신의 아내가 빠져든 사이비종교의 정체를 파헤치고, 그것을 계기로 딸을 잃었던 아프리카로 연구를 위해 다시 떠났다가 원주민 주술사와 대립하게 된다.
제목만을 보아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우며, 어떤 한 부류로 뭉뚱그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지만, 서스펜스와 공포, 그리고 작가의 유머감각까지 곁들여진 이 작품은 책의 두께를 잊게 만들 만큼 흥미진진하다.
명탐정의 규칙 | 히가시노 게이고 (재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등 심금을 울리는(?) 추리소설로 인기가 높지만, <명탐정의 규칙>에서는 웬일인지 삐딱한 모습을 보여준다. 1996년에 처음 출간돼 추리소설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작품이다. 명탐정(이라고는 믿기 어렵지만) 덴가이치가 등장해 12개의 사건을 수사하는데, 밀실, 알리바이, 다잉 메시지 등 정통 추리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패턴을 보여주면서 조목조목 비난한다. 웬만큼 추리소설에 애정이 있는 분에게 추천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다간 표지의 얼굴 같은 표정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사족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전 진지한 작품이 다 탈락했던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순위에 이 작품이 3위까지 오르자 무척 허탈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박광규<계간 미스터리 편집장> 66park@paran.com
여름입니다. 여름이란 계절은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반가운 시기이기도 하지요. 휴가철이 되면서 그동안 바빠서 잊고 지냈던 추리소설에 관심을 갖게 되는 독자들도 늘어날 것이 틀림없습니다. 물론 ‘여름은 추리소설의 계절’이라는 말이 별로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여름 한 철만 읽는 책처럼 보이기 때문이라서요. 물론 한국처럼 바쁘고 다이내믹한 일상이 벌어지는 나라에서 한가하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이 어쩌면 호사에 가까운 일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추리소설의 계절’이 돌아왔으니 좋은 작품들을 만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휴가 때 한 권 꼭 챙겨 가시는 것 잊지 말고요. 고르기 어려운 분을 위해서 여기 열두 편의 작품을 소개합니다.

프랑스 파리 경찰청 기동수사대 소속의 매그레 반장은 국제적 사기범 일명 ‘라트비아인 피에트르’가 기차를 타고 파리로 오고 있다는 전보를 받고 역으로 나가 기다리지만, 도착한 열차의 화장실에서 그의 인상착의와 똑같은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속살인이 벌어지고 매그레 반장은 현장에서 총상까지 입는다. 작가의 초기 작품인 때문인지 매그레 경감의 성격도 아직 잘 나타나지 않지만, 사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작품의 결말부에 가서야 밝혀지는 안타까운 사연들은 훗날 심농이 보여주게 되는 특유의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후 매그레 반장은 장편 75편, 단편집까지 포함하면 100여편에 등장한다.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은 작품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탐정 시드 핼리는 과거 기수였으나 장애물경기 중 낙마 사고로 왼팔 일부를 잃으면서 기수로서의 생명도 끊어진 쓰라린 과거를 갖고 있다. 장애물 경주의 최고 권위 대회 첼트넘 골드컵이 벌어지는 날 시드 핼리는 경마장을 방문, 엔스턴 의원과 만나 승부조작을 조사해 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때맞춰 그곳에서 말 한 필과 한 사람이 사고로 죽고 또 한 사람은 살해되는데, 살해된 사람은 기수 휴 워커로 승부조작 의혹이 있다고 의원이 알려준 사람이었다. 핼리가 사건을 조사하는 동안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위협과 폭행을 당하지만 그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진상에 차츰 다가간다.
지난해 초 세상을 떠난 영국 작가 딕 프랜시스의 작품. 젊은 시절 유명 경마 기수로 활약하다가 은퇴 후 작가로 변신한 그는 평생 경마 관련 미스터리를 발표했다.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다. 총을 든 노상강도가 병원 출근길에 나서던 의사를 위협하는데, 순식간에 의사는 맨손으로 강도를 제압해버린다. 알고보니 그는 ‘피에트로’라는 이름의 전문 암살자였던 과거를 지니고 있었다. 학생 시절 피에트로는 조부모가 폭력배에게 살해되자 복수를 하기 위해 무술을 연마하고 마피아 집안의 아들과 친구가 되면서 그들의 도움을 받아 복수에 성공한다. 그 이후 그는 암살자로 활동하다가 한 여인을 만나면서 마피아 조직과의 관계가 무너져버린다. 조직에서 빠져나온 그는 현재 FBI의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통해 피터 브라운이라는 의사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가 그의 정체를 알던 조직원이었다. 말기암 환자인 그는 자기가 수술 중 죽는다면 피터의 정체를 조직에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단 하루라는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 과거 이야기와 교차되면서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 냉소적인 주인공의 독백과 스피디한 전개는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정보부의 권력 대결에서 밀려 은퇴한 조지 스마일리는 영국 정보부 안에 소련이 심어놓은 고위층 두더지(스파이)를 찾아내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 스파이 소설에서 흔히 기대하게 되는 호쾌한 액션과 비밀무기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 차분하고 느린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지만, 줄곧 팽팽한 긴장감이 이어진다. 1950~60년대에 영국 정보부 소속의 고위직이었던 킴 필비, 가이 버제스 등이 소련에 정보를 넘긴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최근 영화로 제작되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개리 올드먼이 조지 스마일리 역을 맡았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일본의 한 가문에서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경찰로 근무하다가 불의의 죽음을 당한다. 죽음이 근무 중에 일어났다는 것은 같았지만, 한 사람은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또 한 사람은 명예를 잃지 않는다. 그리고 두 죽음의 진상은 미궁으로 빠진다. 수십 년이 지난 후 3대째인 아들은 선대가 말려들었던 미제사건을 해결해 할아버지의 명예를 되살리기 위해 또다시 경찰관의 길을 걷는다. 이 작품은 2차 대전 이후 60여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풀리지 않는 살인사건을 끈질기게 수사하는 모습을 그린 점에서 정통 추리소설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동시에 경찰 조직의 실상을 보여주는 경찰소설이며, 일본의 근대사까지 비춰주는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그의 연작 단편집 <폐허에 바라다>(북홀릭) 역시 추천작. 센도 형사는 정신적 상처를 입고 휴양 중이지만 그의 지인들의 부탁으로 여러 가지 사건을 조사(수사가 아닌)하게 되는데, 사건의 진상보다는 그 배경이 부각되면서 통쾌함보다는 오히려 씁쓸함, 애틋함이 남는다는 것이 이 작품의 특별한 점이다.

<저주받은 피>, <무덤의 침묵>, <목소리> 등 세 편이 번역되어 있다. 딱 하나만을 지목해서 추천하기 어려운, 모두 권하고 싶을 정도의 추천작. 인구가 30만명을 조금 넘는 아이슬란드에서 미국처럼 엄청난 사건이 이곳저곳에서 수시로 벌어질 리는 없지만, 그러나 그곳도 사람이 살고 있는 만큼 범죄가 없을 리는 없다. 작가는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만을 쓴다고 밝혔지만, 성폭행 피해자의 대를 이은 고통을 그린 <저주받은 피>, 가정폭력을 소재로 한 <무덤의 침묵>, 가족의 분열을 다룬 <목소리> 등 그의 작품에서 묘사된 사건은 세계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생경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노처녀 헬렌은 자신의 친구라고 밝힌 에블린이라는 여인에게서 전화를 받은 후 공포에 떨기 시작한다. 헬렌은 아버지의 지인이었던 블랙쉬어에게 에블린을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그 에블린이라는 여인은 남의 고통을 즐기는 것 같은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이었다. 이미 반세기가 훌쩍 넘은 1955년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인간의 무서운 내면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어 어떤 면에서는 더욱 끔찍한 느낌을 준다. 폭력적인 묘사 하나 없이 오고 가는 대화만으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대목이나,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함이 넘치는 마지막 장면 등은 마가렛 밀러가 왜 거장 대접을 받았으며, 또한 어째서 걸작은 세월이 흘러도 걸작으로 남아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어느 여인을 만나 결혼을 약속하고 그녀의 집을 방문해 예비 장인과 위스키를 마시다가 정신을 잃는다. 그런데 깨어나보니 예비 장인은 가슴에 화살이 박힌 채 죽어 있다. 그 방은 창도 문도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으며 화살은 원래 그 방 안에 있던 물건이었다. 무대는 법정으로 바뀌면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변호사 메리베일 경이 나선다. 사소한 단서 하나하나가 젊은이의 무죄, 그리고 진범을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조각이 된다. 존 딕슨 카는 ‘밀실의 제왕’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밀실을 다룬 작품을 많이 발표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에드거 앨런 포가 <모르그 거리의 살인>을 발표한 지 반세기 가까이 지난 19세기 말, 코난 도일이 셜록 홈스를 창조하면서 추리소설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1880년대 말부터 1890년대 초반까지 홈스의 대성공에 힘입어 영국과 미국에서는 단편 추리소설이 유행하고 새로운 주인공들이 속속 탄생한다. 이들 ‘셜록 홈스의 라이벌들’은 대다수가 기억에서 잊혀졌지만 일부는 고전으로 남았다. 정통 추리뿐만 아니라 악당(?)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으며, 단편이므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연쇄살인범 용의자를 사살하면서 과잉 수사라는 물의를 빚어 LA 경찰에서 할리우드 경찰서로 좌천된 형사 해리 보슈. 그는 배수관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 약물 과용에 의해 죽은 듯한 사람이 자신의 월남전 참전 시절 동료였음을 알게 되면서 그의 죽음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조사를 진행하자 그 뒤에는 1년 전 있었던 LA 최악의 은행 강도 사건이 연결되어 있었다. 해리 보슈는 능력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정의 실현을 위해 좌충우돌하는 굽힐 줄 모르는 태도 때문에 견제세력도 많은 인물.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주인공 중 하나가 된 해리 보슈가 처음 등장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후속작품도 계속 번역되고 있어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8년 전 아프리카에서 어린 딸을 사고로 잃은 이후 알코올에 빠져 폐인이 되다시피 한 민족학 교수 오우베는 자신의 아내가 빠져든 사이비종교의 정체를 파헤치고, 그것을 계기로 딸을 잃었던 아프리카로 연구를 위해 다시 떠났다가 원주민 주술사와 대립하게 된다.
제목만을 보아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우며, 어떤 한 부류로 뭉뚱그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지만, 서스펜스와 공포, 그리고 작가의 유머감각까지 곁들여진 이 작품은 책의 두께를 잊게 만들 만큼 흥미진진하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등 심금을 울리는(?) 추리소설로 인기가 높지만, <명탐정의 규칙>에서는 웬일인지 삐딱한 모습을 보여준다. 1996년에 처음 출간돼 추리소설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작품이다. 명탐정(이라고는 믿기 어렵지만) 덴가이치가 등장해 12개의 사건을 수사하는데, 밀실, 알리바이, 다잉 메시지 등 정통 추리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패턴을 보여주면서 조목조목 비난한다. 웬만큼 추리소설에 애정이 있는 분에게 추천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다간 표지의 얼굴 같은 표정을 짓게 될지도 모른다. (사족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전 진지한 작품이 다 탈락했던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순위에 이 작품이 3위까지 오르자 무척 허탈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박광규<계간 미스터리 편집장> 66park@paran.com